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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광장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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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민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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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씨는 이른바 인터넷 1세대다. PC통신 시절부터 꾸준하게 가상사회와 끊임없이‘교류’하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전화선을 통해‘아끼며’사용하던 것과는 달리 초고속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수시로 메일을 확인하고, 인스턴트 메신저 로그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둘러보는 것부터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엄청난 전파력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동호회 게시판을 클릭 하는데 붉은 색 볼드체의 다급한 제목의 글이 게시 돼 있다.‘저는 오늘아침 형을 잃었습니다… OOO병원을 고발합니다.’
장문의 글로 A4로 족히 5매 이상은 나올 듯 한 글이다. 대충 훑어본 사이버씨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를 다른 동호회 게시판에‘특종’이라는 말머리를 달고‘퍼다가’옮긴다. 그는 이것도 모자라 인스턴트 메신저에 로그인 된 친구들에게 게시글 URL을 일러주면서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인터넷 사용을 하면서 한번쯤 겪어 봤음직한 경우다.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브레이크 없는 폭로’의 행렬이다.‘세상에 이런 일이’‘엽기’‘쇼킹’‘대특종’등 하나같이 선정적인 말머리를 단 이같은 폭로성 글들이 인터넷의 엄청난 전파력을 타고 확대 재생산되면서 네티즌들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폭로 모두가 날조된 허위인 것만은 아니다. 친딸이 직접 올린‘광주 파출소장 불륜사건’이나‘386 국회의원들의 5·18 술판사건’등 폭로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사실로 밝혀졌다. PC통신 시절에는‘강미영사건’‘홍대생 조중필 살해사건’‘대구지하철 공사장 폭발’등 이들은 이미‘고전’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지난 6월 29일 서해교전이 재발했을 때 신해철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고스트 스테이션’(www.ghoststation.co.kr)게시판에는‘연평총각’이라는 ID 사용자의 글이 올라왔다.‘서해교전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내용은 이번 서해교전은 우리측 어민이 어로 한계선을 침범해 조업을 하다가 북측경비정에 발각되면서 문제가 발생 됐다는 요지였다.

이 내용은 즉각 인터넷의 각 게시판과 인스턴트 메신저로 옮겨졌으며, 사회 이슈로 부각됐다. 급기야 MBC는 이를 골자로 하는 내용을 메인 뉴스시간에 특집으로 편성했고, 월간조선은 뉴스의 앞뒤는 무시한 채 MBC가 무조건적으로 북측을 감싸고 있다는 보도를 하면서 법정 다툼까지 갔다.

인터넷과 함께 발달해온 인스턴트 메신저는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 보다 조금 더 빠르게 유포되는 시너지 작용을 하면서 소문이 방송 전파라는 공적 매체에 실릴 때 얼마나 파급효과가 커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였다. 이와 함께 사이버 공간의 소식이나 여론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훨씬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는 사실도 확인시켰다.

이밖에도 월드컵 때‘일본에 지진이 발생해 일본에 배정된 경기가 한국에서 열린다’,‘개막식 때 미국의 쇼트트랙 선수 안톤 오노가 입국했다’,‘한국팀이 결승에 진출하면 서울에서 결승전을 열기로 이면 합의했다’,‘미국전에서 동점골이 터진 후 안정환 선수 뒤에서 오노 선수를 흉내낸 이천수 선수가 특정인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 받았다’등의 소문이 사이버공간에서 사실처럼 한동안 떠돌았다.

인터넷을 통한 소문은 대부분 유행처럼 번져나갔다가 사그러들지만 개인의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기도 한다. 탤런트 최진실씨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족과 관련한 추문이 유포되자 당국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고, 이세창씨는 결혼상대자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인터넷으로 확산돼 파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최근에는 박신양씨의 결혼상대자에 대한 소문도 유포돼 박씨가 상당한 충격을 받고,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 기도를 시도하려고 했다는 일부 언론보도도 있었다.

특정 집단을 옹호, 내지는 비판하는 글이 조직적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오르며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사례도 많다. 지난 7월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 서울 시민증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이 가족사진을 찍게 했다는 사실과 관련해 서울시 홈페이지에 비난의 글이 잇따르자 이시장을 옹호하는 글이 무더기로 등장해 이시장 측의‘여론 물타기’의혹을 사기도 했다.

개인과 개인의 직접소통

‘여론’이 변질된 이유는 간단하다. 커뮤니케이션 툴의 발달로 개인과 개인의 커뮤니케이션이 과거보다 더 용이해 졌다는 점이다. 과거 PC통신 시절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방’을 올리고, 도움을 청했지만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면서 게시판 글쓰기는 물론이고, 인스턴트 메신저를 통해 즉각 ‘지인’ 들을 통해 왜곡된 사실을 퍼 옮기는‘자신도 모른 체’마치 진실인양 유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오르는 폭로의 대다수가 허위이거나 과장이 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저널리즘의 형식을 본뜬 폭로들은 아무런 여과장치도 없이 언론사 인터넷 게시판이나 인스턴트 메신저 등과 같은 개인과 개인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인터넷의 폭발적인 보급에 따라 익명성 소문의 증가, 명예훼손, 흑색선전, 여론 조작 등의 부작용이 빈발하자 관련학계와 단체에서는 개선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이버공간이 자정능력을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에 실명제 도입이나 인격 모독성 의견 게재 금지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디어 교육 강화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으며 익명의 제보를 확인 없이 방송이나 신문에서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사이버공간에서의 자유로운 정보 유통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사이버 공간의 등장은 기존 대중매체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개인의 언로(言路)를 틔웠다. 하지만 잘못된 참여와 언어폭력이 방치될 경우엔 개인의 사생활권 침해와 명예훼손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살아있는 여론을 위하여

이처럼 인터넷 사이트는 미셀 맥루한(미디어 이론가)예언대로, TV 신문 등 기존 정보전달 매체보다 훨씬 자유롭고 개방적이어서 시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전자민주주의 무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건강한 여론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뼛속까지 스며든 지난날의 들러리성 소외에서 벗어난 국민이 존재해야 한다. 돌아보건대 지난 시대 새마을운동과 세계화의 깃발 아래 국민대중은 늘상 타율적인 동원의 대상이었지 자율적인 참여의 주체로 대접받지 못했다. 여론이란 언제나 위로부터 강압적으로 덧씌워진 것이었으며, 국민대중은 그 같은‘치먹임’에 옹색하게 맞서는 외마디 저항을 했을 따름이다.

마땅찮은 광장이 없는 대중에게 광장역할은 무엇보다 인터넷이다. 인터넷 매체는 각계각층 현장의 삶과 목소리가 생중계 되는 곳이다. 물론 중계의 마이크는 언제나 가감 없이 투명하다. 공정한 경기 규칙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인터넷 광장에서만, 다양한 각계각층 대표선수들의 샅바싸움이 신명나는 화합의 축제로 피어날 수 있다. 이렇게 여론이 신선한 피돌기를 하는 열린 광장이 삶의 한복판에 자리할 때에만, 주체적인 참여의식을 몸에 익힌 질 높은 국민대중이 존재할 수 있다.

디지털은 기술일지라도 인터넷은 생활이다. 인터넷은 결국 사람의 생활을 이롭게 만드는 도구로 쓰여야 한다. 인터넷을 처음 창시한 팀 버너스리의 말을 상기하자. “인터넷을 통해 그동안 커뮤니케이션의 장애로 야기되었던 인간들의 불행이 감소되길 바란다.”

MSN: minpd @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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