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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때를 벗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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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simp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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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10분쯤 간이 열차는 서울역을 출발하였다.
그리 먼 곳으로 가는건 아니었지만 작은 기대와 어디론가
떠난다는 즐거움도 있었다.

간이 열차는 아담한 역사 조차 없는듯한 파주역에 나를 내려
놓고는 제 갈길을 갔다.

20여분 버스를 타고 또 10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파주보육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보라매공원에서 하던 발달장애아들의 인라인스케이트 도우미를
그만두게 되고 대안 으로 찾은 곳이 소소모... 한달에 한번 파주보육
원을 찾아 이런 저런 일을 하게 된다.

오늘은 아이들을 목욕시키기 위해서 오게 된것이다.
아이들 한명에 우리 한명씩 손을 잡고 혹은 안아들고 인원을 맞췄다.
보육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금강산랜드(온천탕이라고 하지만 역시 여느
온천들과 마찬가지로 내가보기엔 그냥 목욕탕이다)로 향했다.

나의 파트너가 된 녀석은 5살박이 현식이다.
볼살이 통통하고 눈망울도 맑은 녀석이 내가 손을 내밀자 선뜻 내손을 잡아줬다

목욕탕에 들어서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형아 옷벗을테니까 현식이두 옷벗어....형이라구 부르라해야 할까 아저씨라
부르라해야할까 잠깐 고민이된다...에잇 장가도 안갔는데 형이지~
자... 이 아저씨를 형아라불러 ~~ 허걱 !!!
암튼...현식이는 혼자서도 옷을 잘 벗었다 내복과 양말을 벗을때는 내가 좀
도와주긴 했지만 기특하다

첫번째 관문 탕속에 들어가서 때 불리기
나의 어린 시절 경험으로도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면서 시원하다는 그 거짓말
을 워낙 경험했던 터라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우선 내가 먼저 들어가고 물을
조금씩 현식이 몸에 묻혀주다가 발목 무릎 허리..순으로 조금씩 조금씩 현식
이를 적응시켜나갔다 녀석도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웃어 주지도 않는다 녀석은 무척 내성적이다 말을 거의 안하는 편이
어서 친해지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싫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녀석과의 첫번째 관문 때불리기는 성공적인듯 했다

혼자서기에는 물이 깊어서 나를 꼭 안을수 밖에 없는데 내 배위에 얹혀서
메달려 있는 모습이 천사다 그냥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래서 자식을 기르나 보다 ~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두번째 관문 때밀기
현식이의 일일 때밀이를 자처하고 파주까지 온 나로서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열심히 밀어서 멋진 국수발을 만들어 보자 ~
녀석의 팔위로 초록색 때밀이수건을 가져다 대었다. 맘이 상했다 ~

현식아~ 넌 왜이렇게 하얀거야? 응?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그치? 형아는 왜이렇게 까만걸까? 응?
녀석이 한번이라두 웃어줄까 재롱을 떨어 보지만 녀석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한다
팔들어...음..이제 고개 들구...자 뒤돌아봐 안아퍼? 고개만 설레설레 가끔 응~

계속 느낀 거지만 녀석은 목욕을 썩 달가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여느 가정집 아이라면 때를 쓰고 도망다니기도 하고 뻣대기도 했을텐데...
벌써부터 녀석은 참을 줄 안다. 대견스럽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다

목욕을 다 마치고 새 속옷을 입히고 내복을 입히고 뽀얀 얼굴에 크림을 발라주고
혼자서 옷도 잘입는편이다 아직은 도움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많이 해본 솜씨다
혼자서... 현식이는 아직도 내게 잘 웃지는 않지만 내손은 놓치 않는다
내가 어디라도 갈라치면 손을 꼭 붙들거나 안겨서 같이가자고한다 역시 아이다.

보육원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현식이는 내게 엎어지듯 않겨서 잠들었고 나역시
나른함과 그 정겨움에 달콤한 잠들 잔듯하다 아주 짧았지만 이제 헤어져야한다
는 생각도 잊은채...

보육원에 도착하자 마자 식당으로 아이들을 보내 달라고 한다.
식당까지 현식이를 데려다 주고 주르륵 늘어선 식판중 하나에 앉혔다.
현식이는 밥을 먹으려 들지 않고 내손을 꼬옥 쥔다. 내가 떠먹여 주면 잘먹는다
하지만...혼자서 먹으라고 하면 금새 숟가락을 놓고 내 손을 꼬옥 쥔다.

현식이는 헤어짐을 예감한듯 하다.
아니나 다를까 곧 전화가 왔다 이제 출발해야할 시간 이라고...
현식이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현식이는 고개를 내 저었다 가지 말라고
웃지도 않던 녀석이 이번엔 울상이다 다른 아이들은 잘도 먹는데....현식이는
나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형아 갈께 ~
다음달에 또 올께... 현식이는 참을 줄 안다. 그것도 많은 경험을 통해서일 게다
마지못해 나를 보내야 함도 안다. 굳이 녀석은 일어나서 나를 붙잡으려 하지않았다
물끄러미 바라 보았을뿐... 현식이는 그렇게 나를 보내주고있었다 고맙게도
붙잡고 싶지만...가야하는걸 안다는 눈빛 겨우 5살박이 현식이 에게서...

언제나 그렇듯 누구와도 그렇듯 헤어지는 순간은 그런것...
그것을 알아주는 현식이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난 어찌보면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렇게 아이들을 찾는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좋고 내마음이 한결 깨끗해 지기 때문에 말이다...

돌아오는 길이 무겁진 않았다 여러번의 경험으로 나름대로 생각하는 법을
익히기도 했지만 현식이나 아이들도 그렇게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순수한 아이들은 감정에 정직할뿐... 무엇을 요구하는건 아니니까 ~

오랫만의 교외 나들이에 아이들과의 즐거운 목욕 또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현식이가 자꾸 떠오른다. 오늘 또 너로인해 내가 조금은 깨끗해
졌구나 ....

내가 오늘 천사의 때를 벗겼구나

[2002.11.25] from simp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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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여린님의 댓글

  • 여린
  • 작성일
심플리안님이 제 맘에 때도 벗겨주셨네요. ^^

simplian님의 댓글

  • simplian
  • 작성일
때가 많았나 보죠? ^^

자유로이담는우체통

알려드립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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