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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팔짱을 끼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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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하늘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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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세요. 언제봐도 좋은 글이네요.. 쿠쿠...
사랑하는 사람의 팔짱을 끼워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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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팔짱을 끼워 보세요.

한달전쯤 텔레비전에서 즐겨보는 주말 드라마를 보다가 평범한 한
장면에서 갑자기 시선이 멎는 것을 나는 느쪘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함께 길을 걷다가 여자 주인공이 슬며시 남자의 어깨에
기대더니 남자의 팔에 팔짱을 끼는 장면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장면이었지만 나는 순간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팔짱을 낀다. 여자가 남자의 팔에 팔짱을 낀다. 여자가 남자의 팔에
팔짱을 낀다는 것은 남녀가 서로 키스를 하거나 포옹하거나, 애무를
하거나 심지어 섹스를 하는 것만큼 농도짙은 접촉은 아니지만 단순한
일도 아닌 것이다. 비록 남자의 팔에 여자가 살며시 팔을 끼워넣는
행위는 가벼워 보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애인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타인의 침입을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방어거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1미터 정도 이내로는 타인이 범접하지 못하도록하는 경계
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반가우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는데, 그 악수하는 거리 이내로 타인이 허락없이 침범해 들어오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두려움을 느껴서 방어 태세를
취한다는 것이다. 이 '방어거리'가 사라지고 언제나 상대방의 허락없이
그 방어거리 이내로 무단 침입할 수 있는 것은 서로 포옹하고 팔짱을
끼는 행위이며, 그러한 보디 터치(bodytouch)가 허용되는 것은 그만큼
서로 신뢰하고 믿는다는 표시고, 그러한 신뢰의 마음이 바로 사랑의
출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동물은 항상 적으로부터의 공격을 경계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항상 외부적인 공격과 위험에 대해 본능적인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동물에 있어 사랑하는 행위는 적으로부터의 공격에 가장
위험한 취약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여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육체적 행위는 일종의 무장 해제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를 할때 허리에 권총을 차고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는 사람은 없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을 할때 손에
칼을 들고 사방을 경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팔짱은 아주 작은 신체적인 접촉이지만 육체적인 행위보다 더 대담한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옷을 벗고 섹스를 하는 행위는
남의 눈을 피해 은밀히 하는 비밀 행위이지만, 팔짱을 끼는 행위는
만천하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공개적인 구애 행위이며 주위
사람에게 사랑을 선포하는 독립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팔짱을
끼는 사이가 되면 여인은 자기의 발걸음을 자연 남자의 속도에 맞추게
되며, 남자 또한 자기의 빠른 걸음을 여인의 발걸음에 맞추게 되어 두
사람의 걸음걸이는 자연적으로 이인삼각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 여자의
체중은 자연스럽게 남자의 체중에 의지하게 된다. 마치 정육점에서 한
근의 고기가 무게를 달기 위해 저울 위에 얹혀지듯, 자연 두 사람의
거리는 가까워지게 되며 두 얼굴이 서로 가까워져 서로의 호흡과 체취를
느끼게 될 것이며, 머리카락도 서로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부딪치게 될
것이다. 주머니는 서로의 공동 소유가 되어 군밤을 한주머니 속에 넣고
서로 꺼내 먹거나 땅콩도 서로 나눠먹게 될 것이다.

상대방의 호주머니 속에 자유로이 손이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의
돈은 모두 내 것이며 내 돈 또한 상대방의 소유라는 공동의 소유 개념이
생긴 것이며, 이미 두 사람에게 있어 서로 숨겨야 할 비밀이 없다는
표시인 것이다. 팔짱을 끼는 사이라면 여자가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화장실 앞에서 남자가 여자의 핸드백을 들고 서서 기다리고 있는 관계가
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내가 젊었을 때, 어느 날
아내는 슬며시 내 어깨에 팔짱을 끼어 왔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되지는 않지만 아내가 내게 팔짱을 끼어온 날부터 나는 아내가
비로소 나 하나만을 하늘처럼 의지하는 내 여자'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팔짱을 끼고 걷던 날부터 우리는 서로 다정한 젊은 연인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팔짱을 끼고 다닐 때부터 나는 한 여인을
거느린 남자로서 이 여자를 책임질 수 밖에 없다는 절실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함께 팔짱을 끼고 걷는 길거리가 그렇게 아름다을
수가 없었다.

팔짱을 끼고 다닐 때부터 아내는 화장실을 갈때 굳이 전화를 걸러
간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며 팔짱을 끼고 난 뒤부터 아내는 내
앞에서 자장면을 곱배기로 시켜먹곤 하였다. 식사를 하고 나서도 내가
보는 앞에서 지워진 입술에 루즈를 새로 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팔짱을 끼고 걷던 날부터 아내는 편지에 나를 '사랑하는
그대'라는 달콤한 대명사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나 또한 편지에 '내
사랑 그대'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팔짱을 낀 이후부터 나는
아내를 보면 성욕이 느껴지곤 하였으며, 팔짱 을 끼고 다닌 이후부터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때면 아내는 자신의 얼굴을 내 어깨에 얹어놓곤
하였었다. 또한 어둠을 틈타서 나는 아내의 목을 어루만지며 숨가쁜
도둑 입맞춤을 하기도 하였다.

팔짱은 두 아이를 낳을 때까지 계속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 된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어느날
부턴가 나에게서 아내의 팔이 슬며시 떨어져 나갔다. 아이들이 크고
나서는 팔짱을 끼었던 아내의 팔이 저만큼 떨어져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고 말았다. 끼었던 팔짱이 벗겨지고 떨어져 나가고 멀어질
때까지 아 내도 나도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팔짱의
빗장이 벗겨지자 우리 부부는 함께 길을 걸어도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나란히 걷는, 연인 사이에서 동무의 사이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나는 문득
내게서 마치 도마뱀의 꼬리처럼 떨어져 나가버린 아내의 팔짱에 대한
그리움이 불이 붙듯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아아, 나는 그 그리웠던 젊은날에 우리들이 함께 하였던 팔짱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함께 성당을 가던 일요일 아침,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우리 다시 팔짱을 낍시다. " 느닷없는 내 말 한마디에 아내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당신이 옛날처럼 내 어깨에 기대어 팔짱을 끼었으면 하는데
‥‥‥‥ " 그러자 아내는 마치 징그러운 벌레를 보듯 진저리를 치면서
말하였다.
"엣끼, 여보슈. 팔짱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예요. "
"어때서, 우리들이 어때서. "
"우리들 같은 중늙은이들이 팔짱을 끼고 다니면 남들이 흉봐요. 남들이
웃는다구요. 보세요, 팔짱을 끼고 다니는 중늙은이들이 있는가‥‥‥‥
" 아내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는 성당의 앞마당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나는 아내가 가리킨 그곳을 바라보았다. 마침 미사 시간이 되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아내의 말대로 팔짱을 끼고 있는 중년의
부부들은 단 한 쌍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난 팔짱을 끼고 싶소. 낍시다. " 내가 옛날처럼 오른쪽 어깨를
동그랗게 벌리자 아내는 내 어깨를 소리가 나도록 때리면서 말했다.
"미쳤나 봐. 이 할아버지가. "

난 안다. 아내가 내게 팔짱을 끼지 않는 것은 우리가 나이 든
중늙은이여서가 아니라, 그래서 남들이 흥볼까 두려워서 가 아니라,
우리 기쁜 젊은날처럼 나에 대한 사랑의 열정이 그만큼 뜨겁게 타오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임을.

몇년전 본 한장의 사진이 기억난다. 영국으로 떠난 은퇴한 정치가
김대중씨가 그의 아내와 외국 여행중에 서로 팔짱을 끼고 찍은,
여성지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 에서 김대중씨는 대통령
선거 전의 유세 때와는 전혀 다른 새신랑의 얼굴로, 당당하게 팔짱을 긴
아내와 달콤한 표정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두 사람의 팔짱을 낀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안다. 환갑이 넘고 칠십이 다된 노정객 김대중씨가 아래로부터
그렇게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대접을 받는 것은,
그가 가정에 있어서 훌륭한 남편이며 아이들에게 있어 존경받는
아버지임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는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나는 아내의
팔짱을 다시 받고 싶다. 아내에게서 팔짱의 대접을 받고 싶다. 강제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온 넘쳐 흐르는 사랑의 표시로. 그리하여 우리
부부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팔짱을 끼고 다니는 그런 다정한
애인 사이가 되고 싶다.

아니다. 할아버지가 될수록 더욱 팔짱을 끼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나이가 들어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결국 두 몸의 두 사람이 한
몸의 한 사람으로 되어간다는 의미이므로.

나는 안다. 언젠가는 아내가 내 어깨에 다시 슬며시 팔짱을 끼게 될
것임을. 마치 손가락에 결혼 반지를 슬며시 끼워넣듯이. 그날 나는
새신랑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최인호 지음,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제삼기획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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